생존소설 아카이브 2회 - 설악산 조난기 1화
1. 출발
6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아침, 창수는 설악산국립공원 속초 입구 주차장에 자신의 캠핑밴을 세워두고 2박 3일 차박 계획을 시작했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그는 첫날 소공원에서 출발해 비선대-천불동계곡-울산바위로 이어지는 왕복 12km 코스를 오르고, 울산바위 인근에서 야영한 후 이튿날 계조암으로 하산하는 일정을 세웠다.
“이번엔 제대로 된 산행을 해보자.”
창수는 소공원 매표소에서 입산 신고를 마치고 오전 8시에 출발했다. 특전사 출신인 그에게는 산행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었다. 배낭에는 차박용 텐트, 침낭, 충분한 식량과 물, 그리고 각종 서바이벌 장비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비선대까지는 평탄한 계곡 길이 이어졌다. 수정같이 맑은 천불동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상쾌했다. 비선대 폭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본격적인 암벽 구간인 울산바위 코스로 접어들었다.
"날씨가 갑자기..."
오후 1시경, 하늘이 점차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6월 장마철의 전형적인 날씨였다.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가 점차 굵어지면서 설악산의 화강암 바위들을 촉촉하게 적셨다. 창수는 우비를 단단히 여미며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울산바위 정상까지 약 800m 고도를 올라야 하는 급경사 구간. 천불동계곡에서 올라오는 가파른 암벽 코스였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는 경사 70도의 바위 구간이었지만, 비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앗...!!"
오후 2시경, 울산바위 정상을 200m 앞둔 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천불동계곡 상류부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만든 임시 물길을 건너던 중이었다. 이끼에 덮인 화강암 바위가 빗물로 인해 얼음장보다 미끄러웠다.
“이크, 큰일날뻔 했네...”
속으로 중얼거린 그는 등산화 끈을 다시 조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의 조심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평소보다 넓어 보이던 화강암 바위 하나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아...!”
창수의 오른발이 순식간에 미끄러졌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주변 바위를 붙잡으려 했지만, 젖은 화강암은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그의 몸은 천불동계곡 방향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바위와 나무뿌리, 돌멩이들이 그의 몸을 때렸다. 배낭이 등을 보호해주었지만, 팔꿈치와 무릎에는 날카로운 아픔이 스며들었다. 착지 순간 왼쪽 발목이 뭔가에 부딪히며 뒤틀렸다. 굴러떨어지는 동안 보인 것은 회전하는 하늘과 설악산의 웅장한 암벽들, 그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울산바위 등산로였다.
“쿵...!”
마침내 천불동계곡 중류 지점의 작은 바위턱에서 몸이 멈췄다. 창수는 의식을 잃었다.
“으음...”
희미한 신음과 함께 창수는 눈을 떴다.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손목의 등산용 시계를 확인해보니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 4시간 동안 기절해 있었던 것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천불동계곡 본류에서 조금 벗어난 지류 부근으로 20여 미터는 아래로 굴러떨어진 듯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울산바위로 향하는 정규 등산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창수는 중얼거리듯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특전사에서 익힌 생존 훈련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먼저 부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팔꿈치와 무릎에 찰과상이 있고, 왼쪽 어깨가 뻐근했다. 그런데 왼쪽 발목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등산화를 벗겨보니 발목이 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복숭아뼈 부위를 만져보니 날카로운 통증이 스쳤다.
“이건... 골절일 수도 있어.”
특전사 시절 배운 응급처치법에 따라 발목을 조심스럽게 움직여보았다. 다행히 완전 골절은 아닌 것 같았지만, 복숭아뼈에 금이 갔거나 심한 염좌인 것은 확실했다. 발목을 디딜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일단 응급처치부터...”
<계속>
등산/산악 용어
차박: 차량을 이용한 야영. 자동차에서 숙박하거나 차량 근처에서 캠핑하는 것
입산 신고: 국립공원이나 산악지역 입장 시 안전관리를 위해 관리소에 등산 계획을 신고하는
암벽 구간: 바위로 이루어진 가파른 등반 구간. 일반 등산로보다 기술과 주의가 필요한 난이도 높은 코스
고도: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 여기서는 울산바위 정상까지 800m를 올라가야 한다는 의미
찰과상: 피부 표면이 긁혀서 생긴 상처
복숭아뼈: 발목 양쪽에서 돌출된 뼈(정식명칭: 내측/외측 과골)
골절: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상태
염좌: 관절 부위의 인대가 늘어나거나 찢어진 부상
응급처치: 부상이나 응급상황 시 의료진 도착 전까지 실시하는 기본적인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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