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소설 아카이브 24회 - 나는 혼자가 되었다. 8화 첫 번째 밤(1)


 

새벽 공기는 차가운 물처럼 폐 속을 스쳐 갔다. 남방주는 잠든 사이 꺼져버린 모닥불 앞에서 눈을 떴다. 재만 남은 화롯가에 손을 대어보니 미지근한 온기만이 마지막 생명의 흔적을 전해줄 뿐이었다. 밤사이 내린 이슬이 얼굴과 옷을 촉촉하게 적셨고, 몸 전체가 바위처럼 굳어있었다.

 

...”

 

입에서 나온 한숨이 하얀 김으로 피어올랐다. 체온이 많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남방주는 몸을 일으키려다 어지러움을 느꼈다. 눈을 뜨다시피 밤잠을 설친 탓이었다. 불이 꺼질까 봐, 야생동물이 나타날까 봐, 무엇보다도 갑작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제 해안가에서 수거한 낡은 옷을 몸에 감았다. 어딘가에서 떠내려온 거적대기 옷이었다. 그때였다.

 

저건...”

동굴 입구로 스며드는 새벽빛은 희미했지만 분명했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그 빛은 마치 세상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듯 익숙한 여명을 드러냈다. 남방주는 떨리는 손으로 재를 헤쳐 불씨를 찾았다. 다행히 깊숙한 곳에 콩알만 한 불씨가 숨어있었다.

 

다행이야... 아직 살아있어...”

 

마른 풀과 송진을 조심스럽게 올린 그가 숨을 불어넣자, 불씨가 다시 생명을 얻었다.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자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불이 있는 한 자신도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끼야악... 끼야악... 끼륵...”

 

저멀리에서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벌써 활동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어제 만났던 그 갈매기도 있을까. 남방주는 문득 그 새가 보고 싶어졌다. 외로운 무인도 섬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나눈 존재였다. 동굴에서 나오자 새벽 공기가 가슴속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첫날의 당황과 공포 대신, 이제는 이곳의 공기가 조금 익숙해진 것 같았다.

 

... 이 냄새...”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소금기와 함께 해초 냄새가 섞여 있었고, 섬 내부에서 오는 바람에는 나무와 풀의 푸른 향기가 배어있었다.

 

이제부터... 정말 시작이야...”

 

혼잣말이 새벽 공기에 흩어졌다. 어제는 살아남은 것으로도 기적이었다면, 오늘부터는 진짜 생존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물은 있지만, 음식이 부족했고, 임시나마 잠잘 곳을 만들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구조 받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먹을 물을 구하자...”

 

해가 수평선으로 완전히 떠오르자 섬 전체가 황금 빛으로 물들었다. 어제는 혼미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섬의 모습이 이제 선명하게 드러났다. 생각보다 큰 섬이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100m 정도 되어 보였고, 해안선을 따라 다양한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저쪽일 거야...”

 

남방주는 어제 발견한 샘터로 향했다. 목이 말랐고, 무엇보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고 싶었다. 숲속의 풀을 헤치며 걷는 동안,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섬의 생명력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과거에는 사람이 살았을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갈매기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 외에도 작은 새들의 청아한 소리, 그리고 처음 듣는 특이한 울음소리들이 섞여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부서져 내리고, 이슬에 젖은 풀잎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꽤나 아름다운 곳인데...”

 

남방주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만약 이곳이 여행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내와 딸을 데리고 와서 함께 이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하지만 지금은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전장이었다. 샘에 도착하자 어제와 똑같이 맑은 물이 바위틈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남방주는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자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물을 마시며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첫 번째는 음식을 구해야 했다.

 

칡이라도 있으면...”

 

어제 먹은 생 굴과 해초로는 체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좀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찾아야 했다. 두 번째는 제대로 된 잠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동굴은 임시 피난처일 뿐이었다. 비가 오거나 추워질 때를 대비해서 좀 더 견고한 거처가 필요했다.

 

다음은... 구조...”

 

세 번째는 외부로 구조 신호를 보낼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연기든, SOS 표시든, 지나가는 배나 비행기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살아날 확률이 높은 거였다.

 

하나씩 해보자...”

 

남방주는 마음을 추슬렀다. 절망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움직여야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첫 번째의 시급한 과제는 음식 조달을 위해 해안가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어제 먹은 생 굴 맛을 기억한 방주는 바닷가로 향했다.

 

일단은 갯바위에 붙은 걸 캐자.”

 

썰물 시간대라 평소보다 많은 갯바위가 드러나 있었다. 바위 사이사이에는 다양한 해산물들이 숨어있을 것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갯바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굴은 어제도 봤으니 쉽게 찾을 수 있었고, 홍합도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런데 어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가사리, 성게, 그리고 작은 게들...

 

이것들도 먹을 수 있을까...?”

 

남방주는 TV에서 본 생존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봤다. 웬만한 바다 생물들은 먹을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았다. 물론 독이 있는 것들도 있겠지만, 배가 고픈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마침 떠밀려온 스티로폼 상자가 눈에 띄었다.

 

이게 뭐야...? 프라스틱 그릇이 들어 있네...”

 

작은 게 몇 마리를 잡아서 그릇에 담았다. 처음에는 빨라서 잡기 어려웠지만, 요령이 생기자 어렵지 않았다. 굴과 홍합도 충분히 모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들을 어떻게 조리할지가 문제였다.

 

익혀서 먹어야지...”

 

생으로 먹기에는 위험할 것 같았다. 불에 구워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구울지가 문제였다. 프라이팬도 없고, 그릇도 마땅치 않았다. 그때 큰 굴 껍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키조개만 한 크기의 납작한 굴 껍데기였다. 이것을 프라이팬 대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걸로...”

 

남방주는 여러 개의 큰 굴 껍데기를 모았다. 이것들을 불 위에 올려놓으면 간단한 조리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해안가에서 음식 재료를 모으는 동안, 남방주는 바다를 계속 바라봤다. 혹시 지나가는 배가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수평선 끝까지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인도 섬이 얼마나 외진 곳에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 누군가 나를 찾고 있을까?”

 

가족들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 남영호 침몰 소식을 들었을 것이었다.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아내는 울고 있을까. 딸은... 딸은 아빠가 죽었다고 생각할까. 생각이 하염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가 죽는다면... 안 돼... 그런 생각 하면 안 돼...”

 

남방주는 고개를 저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의지를 꺾을 뿐이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오전 내내 음식 재료를 모은 남방주는 동굴로 돌아왔다. 모닥불을 다시 지피고 큰 굴 껍데기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즉석 프라이팬이 완성되었다.

 

타닥...! 타닥...!!”

<계속>

티스토리 생존 소설 https://yyu00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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