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소설 아카이브 26회 - 나는 혼자가 되었다 - 제9화: 생존의 기술(1)
새벽 안개가 바다 위를 떠다니며 섬을 감쌌다. 남방주는 쉘터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밤사이 내린 이슬의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세 번째 새벽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하루가 기적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시간이 무거운 돌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렀다.
‘셋째 날인데... 구조대는 언제쯤 올까...?’
그의 내면에서 불안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처음 이틀은 생존 본능과 희망이 두려움을 압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의 냉혹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남방주는 손끝으로 쉘터의 나뭇가지를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이 원시적인 거처가 언제까지 자신의 집이 될까. 며칠일까, 몇 주일까, 아니면...
“아니야, 이럴 수는 없어...”
중얼거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은 독이었다. 모닥불의 재를 헤치자 아직 붉은 불씨가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마른 풀과 나뭇가지를 조심스럽게 올리고 숨을 불어넣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순간 어둠이 한 발짝 물러났고, 남방주의 가슴속에서도 희미한 용기가 되살아났다.
“오늘은... 오늘은 뭔가 달라지는 게 없을까...”
그는 중얼거리며 동굴 밖으로 나섰다. 새벽 공기는 소금기와 해초 냄새로 가득했고, 멀리서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어제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까악, 삐아악... 삐아악...”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평소보다 날카롭고 격렬했다. 무언가 그들을 흥분시키는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남방주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해안가로 향하는 길에서 그는 멈춰 섰다.
“저게... 뭐야...?”
밤사이 폭풍이라도 있었던 걸까. 해안가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쓰레기가 밀려와 있었다. 스티로폼 상자, 플라스틱 병, 찢어진 폐어망 조각들이 파도에 밀려 갯바위 사이사이에 끼어있었다. 남방주는 가슴이 뛰었다. 쓰레기더미 속에는 생존에 필요한 보물들이 숨어있을지도 몰랐다.
“뭐라도 있을 거야...”
그는 서둘러 쓰레기더미에 다가갔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낡은 어망이었다. 구멍이 몇 개 뚫려있긴 했지만 수선하면 물고기를 잡는 데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옆에는 녹슨 낚싯바늘 몇 개가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있었다.
“낚시다... 낚시를 할 수 있겠어!”
남방주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까지는 갯바위에서 조개나 굴을 채취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진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더 열심히 쓰레기를 뒤졌다.
“이게 뭔가...?!”
플라스틱 봉지 하나를 집어 들었을 때, 그의 손이 멈췄다. 봉지에 적힌 글자들이 한글이 아니었다. 중국어도 아니었다. 더 낯선 문자들이었다.
“베트남어인가... 라오스어인가...?”
남방주는 중얼거렸다. 그는 회사에서 동남아시아 출장을 다닐 때, 본 적 있는 문자들이었다. 과자 봉지의 유통기한을 보니 비교적 최근 것이었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지?’
갑자기 자신이 있는 위치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남영호가 침몰한 곳은 분명 서해였다. 하지만 이 쓰레기들의 출처를 보면... 혹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곳까지 떠밀려온 건 아닐까.
“중국 남쪽... 베트남 근처?”
그렇다면 구조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한국에서 수색하는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남방주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추측일 뿐이었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쓸 만한 것들부터 모으자.”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다시 쓰레기 수색에 집중했다. 낚싯바늘과 어망 외에도 유용한 것들이 많았다. 녹슬었지만 아직 쓸 만한 칼, 플라스틱 통들, 로프 조각들, 그리고 놀랍게도 방수포 한 장까지 발견했다.
“이거면... 쉘터를 훨씬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방수포는 찢어진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대부분 멀쩡했다. 비가 와도 젖지 않는 진짜 지붕을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쓰레기 수색을 마치고 전리품들을 정리하는 동안, 남방주는 바다 저편을 바라봤다. 수평선 끝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파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건... 물개인가...?”
검은 점 같은 것들이 바다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물개 떼였다. 남방주는 가슴이 뛰었다. 물개가 있다는 것은 이 해역에 풍부한 먹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물고기도 많을 것이고, 새우나 게 같은 갑각류도 많을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개들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평화롭게 유영하던 것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에서 도망치는 것 같았다.
“왜 그러지...? 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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