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소설 아카이브 25회 - 나는 혼자가 되었다 8화 첫 번째 밤(2)
먼저 작은 게들을 구워보았다. 껍데기가 빨갛게 변하며 고소한 냄새가 콧속으로 퍼졌다. 처음 맛보는 야생 구이였다. 맛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바다의 짭조름한 맛이 입안 가득히 담겨졌다.
“이 정도면... 먹을 만해...”
굴도 구워 먹어보니 생굴보다 훨씬 고소했다. 홍합은 입이 벌어지며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간단한 식사였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웠다.
배를 채우고 나니 몸에 힘이 생겼다. 이제 두 번째 임무인 거처 마련에 착수할 시간이었다. 동굴은 임시 피난처로는 괜찮았지만, 장기간 생활하기에는 부족했다. 비가 올 때나 강한 바람이 불 때를 대비해 좀 더 견고한 쉘터가 필요했다.
“높은 곳으로 가자...!”
섬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바람을 막을 수 있으면서도 물을 구하기 쉬운 곳, 그리고 구조 신호를 보내기에도 유리한 위치... 여러 조건을 고려한 끝에 해안가 언덕 중턱의 작은 평지를 선택했다.
“여기가 좋은가...?!”
나무들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면서도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이었다. 샘까지의 거리도 적당했다.
“그래, 여기로 정하자...”
이제부터 은신처를 만들 재료를 모아야 했다. 쉘터 건설에 필요한 나무, 풀, 넝쿨... 이 모든 것들을 이 섬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오후 내내 쉘터 작업에 매달렸다.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아 기본 골조를 만들고, 큰 나뭇잎들과 풀을 엮어서 벽을 만들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도구가 없으니, 잘 안되네...”
손이 거칠어지고 가시에 찔려 피가 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최소한의 형태는 갖춰야 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넝쿨로 나뭇가지들을 묶고, 큰 나뭇잎들을 지붕처럼 엮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쉘터 모양이 갖춰졌다. 크기는 한 명이 누울 수 있을 정도였다. 작업하는 동안 계속해서 바다를 바라봤다. 혹시 배가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내일은 구조 신호를 만들어야겠어...”
쉘터가 어느 정도 완성되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밤에 찬 바람을 막을 수 있을 것이었다. 작은 성취였지만 큰 의미가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갈매기들이 둥지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었다. 남방주는 문득 어제 만났던 그 갈매기가 궁금해졌다.
“어디 있을까... 그 녀석...”
혼잣말을 하며 절벽 쪽을 바라봤다. 멀리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끼야악... 끼야악...”
분명히 어제 그 갈매기의 울음소리였다. 남방주는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향했다. 절벽 근처에서 정말로 어제 그 갈매기를 만났다. 같은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방주가 다가가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안녕... 또 만났네...”
“...”
남방주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갈매기는 경계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한 표정이었다.
“끼야악...”
갈매기가 대답하듯 울었다. 왠지 모르게 그 울음소리가 반갑다는 인사처럼 들렸다.
“나... 오늘 집을 지었어. 작지만... 그래도 잠잘 곳이 생겼지...”
갈매기에게 하루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물론 갈매기가 이해할 리는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 외로운 섬에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이 섬에서 태어난 거야?”
갈매기는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 마치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나는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야. 사고로... 어쩔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렸다. 갑자기 현실이 밀려왔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끼야악... 끼야악...”
갈매기가 위로하듯 울었다. 그 소리가 따뜻하게 들렸다.
“고마워... 네가 있어서 조금 덜 외로워...”
남방주는 갈매기와 함께 석양을 바라봤다. 붉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동시에 슬펐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뜻이었다.
“내일은... 내일은 구조 신호를 만들어야지. 누군가 나를 찾으러 올 거야...”
갈매기는 한동안 그와 함께 있다가 날개를 펼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남방주는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날 수 있다는 게
밤이 찾아왔다. 어제보다는 덜 무서웠다. 하루를 보내며 이 섬에 조금 적응했기 때문일까. 새로 만든 쉘터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어제보다 더 큰 불이었다. 나무도 더 많이 모았고, 불 다루는 요령도 늘었다.
“이제... 이제 조금 나아지고 있어...”
남방주는 자신을 격려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음식도 구했고, 잠잘 곳도 만들었다. 내일은 구조 신호를 만들 것이었다. 불꽃을 바라보며 가족들을 생각했다. 지금쯤 뉴스에서 남영호 침몰 소식을 보고 있을까. 생존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여보... 딸... 아빠는 살아있어. 꼭 돌아갈게...”
바람이 불 때마다 불꽃이 흔들렸다. 하지만 어제보다는 안정적이었다. 쉘터가 바람을 막아주었다. 먼 곳에서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는 무서웠지만, 오늘은 덜했다. 이 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내일은...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피로가 몰려왔다. 온종일 몸을 쓴 탓이었다. 하지만 좋은 피로였다. 생존을 위해 노력한 피로였다. 불을 조금 줄이고 쉘터 안에 누웠다. 어제보다 훨씬 따뜻했다. 바람도 덜 들어왔다.
“둘째 날... 오늘도 견뎠어...”
눈을 감으니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무서운 소리가 아니라 평화로운 소리였다. 이 섬의 생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내일의 계획이었다. 구조 신호를 만들고, 음식을 더 구하고, 쉘터를 보완하고...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희망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한 길은 있을 것이었다.
‘눈이, 저절로 감기네...’
꿈속에서 남방주는 집에 있었다. 아내가 따뜻한 저녁을 차려주고, 딸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지고 차가운 바닷물이 밀려왔다.
“으음...”
남방주는 신음하며 잠에서 깼다. 악몽이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더 힘들었다. 꿈속의 따뜻한 집과 현실의 무인도... 그 차이가 너무 컸다. 밖에서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이 온 것이었다. 남방주는 몸을 일으켰다. 쉘터 덕분에 어제보다 훨씬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뭐지...?!”
으슬한 추위에 모닥불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불씨는 살아있었다. 나뭇가지를 더 얹고 바람을 불어넣자 다시 불꽃이 피어올랐다.
“셋째 날... 시작이다...”
남방주는 새로운 하루를 맞았다.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를 만들어야 하는 다짐이 새로웠다. 생존이 아니라 탈출을 위한 하루라는 걸 그는 마음에 되새겼다.
“바다는... 그대로 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봤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오늘은 구조 신호를 만들 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었다.
“여보야... 딸...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꼭 돌아갈게...”
아침 햇살이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새로운 희망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하늘을 날며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격려처럼 들렸다.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그래... 포기하지 않을게. 절대로...”
남방주는 주먹을 쥐었다. 새로운 하루, 새로운 시작이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었다. 반드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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