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소설 아카이브 7회 - 나는 혼자가 되었다. 1화 월미도의 아침 (1)

 


      <남영호 낚시>

1. 월미도의 아침

토요일 새벽 530, 월미도 선착장은 이미 분주했다. 가을 바다 낚시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선착장 곳곳에서는 낚시 장비를 점검하는 소리와 기대에 찬 웃음소리가 어우러졌다. 남방주는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방파제 끝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44세의 평범한 회사원인 그에게 이런 바다 낚시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소중한 휴식이었다. 아내는 또 낚시냐며 투덜거렸지만, 그녀도 남편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낚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남영호 승선하실 분들,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선장의 큰 목소리가 선착장에 울려 퍼졌다. 남방주는 서둘러 커피를 마저 마시고 낚시 가방을 메고 남영호 쪽으로 향했다. 27톤 규모의 남영호는 흰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깨끗한 낚시 배였다. 선미에 걸린 남영호라는 깃발이 아침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넘 좋아...’

최 선장은 쉰 살 정도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중년 남성이었다. 그의 입에는 늘 담배가 물려있었고, 오늘 따라 그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평소보다 손님이 많이 몰렸기 때문이었다.

어이구, 오늘 정말 대박이네요. 원래 2개 팀만 받기로 했는데, 시즌이라고 2개 팀을 더 받았어요. 이러면 200만 원 웃돈이 생기는 거라니까요.”

최 선장은 기관장에게 작은 소리로 말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가을철 서해 바다 낚시 시즌이라 예약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4개 팀, 50 여 명의 낚시꾼들이 남영호에 승선했다. 선장은 승객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안전 수칙을 설명한 후 맺음말을 이었다.

“...여러분, 오늘 날씨 정말 좋죠? 파도도 잔잔하고 바람도 적당해요. 우리가 갈 곳은 중국 해와 인접한 바다인데, 거기서 민어, 홍어 같은 가을 어종이 잘 잡힙니다. 12일 동안 만선의 기쁨을 누려보세요!”

남방주는 갑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옆에는 60대로 보이는 김 씨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그30년 넘게 바다 낚시를 해온 베테랑이었다. 모자 속에 감춰진 흰 머리털이 살짝 드러난 김 씨는 남방주를 향해 물었다. 

젊은이, 낚시 자주 하나요?”

한 달에 한 번 정도요. 아직 초보라서 많이 배워야 해요.”

하하, 바다 낚시는 경험이 전부야. 오늘 내가 잘 가르쳐줄게.”

“...”

김 씨 아저씨의 친근한 말에 남방주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만남도 바다 낚시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오전 6시 정각, 최 선장이 엔진 시동 스위치를 눌렀다.

부르르르...!!!”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며 남영호가 천천히 선착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선장의 얼굴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오늘 하루 벌이만으로도 한 달 생활비는 충분할 것 같았다.

출발합니다! 모두 안전벨트 착용하시고, 멀미 나시는 분들은 미리 약 드세요!”

남영호는 서서히 속력을 높이며 월미도 선착장을 벗어났다.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이 바다를 황금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오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승객들은 하나둘 갑판으로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보, 잘 다녀와. 조심하고.”

아내가 아침에 건넨 말이 남방주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무사히 출발했어. 큰 고기 잡아서 갈게.”

4시간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남영호는 인천 앞바다를 지나 서해 먼바다로 향했다. 승객들은 저마다 낚시 장비를 점검하고, 어떤 고기를 잡을지 기대에 부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다는 평온했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남방주는 갑판 난간에 기대어 넘실거리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복잡한 인간관계, 그 모든 것들이 바다 위에서는 한순간에 잊혀졌다. 이것이 바로 그가 바다 낚시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김 씨 아저씨가 다가와서 말했다.

바다가 참 좋지? 나도 처음 바다 낚시 했을 때가 생각나네. 그때도 이렇게 맑은 날이었어.”

, 정말 좋네요. 이런 날씨면 큰 고기도 잘 잡힐 것 같아요.”

그러게. 오늘은 정말 대박 날 것 같아.”

두 사람은 함께 수평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영호는 힘차게 서해를 가르며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도 4시간 후에 일어날 비극을 예상하지 못한 채로...

남영호가 월미도를 완전히 벗어나자, 승객들은 본격적으로 낚시 준비에 들어갔다. 각자 가져온 낚싯대를 조립하고, 미끼를 준비하며, 어떤 포인트가 좋을지 선장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선장님, 오늘 어디서 낚시하나요?”

한 승객이 물었다.

중국해 쪽 깊은 바다로 갈 겁니다. 거기가 민어, 홍어 포인트거든요. 수심이 30미터 정도 되는데, 바닥이 모래와 뻘이 섞여있어서 고기들이 많이 몰려들어요.”

최 선장의 설명에 승객들은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특히 베테랑 낚시꾼들은 벌써부터 어떤 채비를 사용할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민어 낚시에는 역시 갯지렁이가 최고야.”

아니야, 청갯지렁이가 더 좋다고.”

요즘엔 인조 미끼도 잘 먹던데?”

남방주는 이런 대화를 들으며 자신의 장비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5.4미터 짜리 민물 낚싯대, 스피닝릴, 그리고 각종 채비들. 아직 초보라 장비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다 색깔이 점점 진해졌다. 연안의 연한 초록색에서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니, 정말로 깊은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전 8시 경, 갑판 한쪽에서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김치찌개와 밥, 그리고 각종 반찬들이 차려졌다. 바다 위에서 먹는 뜨거운 김치찌개는 육지에서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바다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네요.”

남방주가 김 씨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렇지. 바닷바람 맞으면서 먹으니까 식욕도 더 좋아지고. 그런데 젊은이, 가족은 있나?”

, 아내하고 딸 하나 있어요. 딸이 이제 중학교 2학년이에요.”

, 그럼 사춘기네. 힘들겠어.”

, 요즘 아빠하고는 말도 안 해요. 그래서 더 낚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스트레스 풀려고.”

하하, 나도 그 시절이 있었지. 지나고 보니까 다 추억이야. 딸이 결혼하고 나면 그제서야 아빠의 소중함을 알게 되더라고.”

김 씨 아저씨의 말에 남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에 있는 아내와 딸이 그리워졌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면 딸에게 큰 고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오전 9시가 넘어서자, 남영호의 엔진 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선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여러분, 곧 낚시 포인트에 도착합니다. 모두 안전사고에 주의하시고, 낚시 준비 완료하세요!”

승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최종 준비에 들어갔다. 낚싯대를 조립하고, 릴을 점검하고, 미끼를 준비했다. 갑판 곳곳에서 채비를 묶는 소리와 장비를 점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방주도 김 씨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민어 채비를 완성했다. 바늘 3개를 단 삼각 채비였는데, 각각에 갯지렁이를 꿰었다.

이렇게 하면 돼. 바늘이 바닥에 닿으면 살짝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거야. 그러면 민어가 관심을 보이거든.”

, 알겠습니다.”

오전 10, 남영호가 완전히 멈췄다. 선장이 닻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낚시 시작!’이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드디어 서해 바다 한가운데서 낚시가 시작되었다. 수심은 32미터, 조류는 적당했고, 바람도 거의 없어서 최적의 낚시 조건이었다. 승객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포인트를 찾아 채비를 내렸다.

남방주는 갑판 왼쪽 끝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채비를 내렸다. 바닥에 닿는 느낌이 전해지자, 김 씨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살짝 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바다는 평온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가을 햇살이 바다를 반짝이게 만들고 있었고, 멀리서는 갈매기들이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런 평화로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아무도 12시간 후에 닥칠 재앙을 예상하지 못한 채, 남영호의 50 여 명 승객들은 만선의 꿈에 젖어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첫 입질은 김 씨 아저씨에게 왔다.

? 왔다...!”

그의 낚싯대가 크게 휘어지며 릴에서 줄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주목하는 가운데, 10분 넘는 실랑이 끝에 40센티미터가 넘는 민어가 올라왔다.

우와! 대박이네요!”

첫 고기부터 이렇게 크다니!”

승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남방주도 박수를 치며 축하해주었다. 이런 순간이 바로 바다낚시의 매력이었다. 언제 어떤 고기가 올라올지 모르는 긴장감과 설렘.

젊은이 차례야. 곧 너한테도 올 거야.”

김 씨 아저씨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정말로 30분 후, 남방주의 낚싯대에도 묵직한 손맛이 전해졌다. 처음엔 바닥에 걸린 줄 알았는데, 살짝 당겨보니 물고기가 저항하는 느낌이 들었다.

? 이거 고기 같은데요!”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김 씨 아저씨의 조언에 따라 남방주는 침착하게 릴을 감기 시작했다. 수면 가까이 올라온 것은 30센티미터 정도의 민어였다. 크지는 않았지만 남방주에게는 소중한 첫 고기였다.

그렇게 오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승객들은 저마다 몇 마리 정도의 고기를 낚아 올렸고,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점심시간에는 갓 잡은 민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었는데,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역시 바다에서 잡은 고기로 끓인 매운탕이 최고야!”

이 맛에 바다 낚시 하는 거지!”

오후에도 낚시는 계속되었다. 날씨는 여전히 좋았고, 고기도 꾸준히 올라왔다. 남방주는 총 5마리의 민어를 낚았는데, 초보치고는 꽤 좋은 성과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갈 무렵, 선장이 다시 안내 방송을 했다.

여러분, 오늘 첫날 낚시는 이것으로 마감하겠습니다. 저녁 준비해드릴 테니까 정리 좀 해주세요.”

낚시꾼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채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만에 쿨러 박스가 고기로 가득 찼다. 내일 아침까지 더 낚시를 한다면 정말 만선이 될 것 같았다. 저녁은 바비큐 파티였다. 잡은 고기 일부를 구워 먹고, 소주와 맥주도 곁들였다. 바다 한가운데서 먹는 바비큐는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 음식보다 맛있었다.

남방주는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자신이 낚은 민어들과 함께 찍은 셀카였다.

... 대박! 큰 거 많이 잡았네. 조심해서 들어와.”

호들갑을 떤 아내의 답장이 금세 왔다. 밤이 되자 남영호에는 형형색색의 집어등이 켜졌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같았다. 승객들은 갑판에서 별을 보며 낚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늘 정말 좋은 하루였네요.”

남방주가 김 씨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러게. 내일 아침에도 이런 날씨면 정말 대박 날 텐데...”

두 사람은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일을 기대했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고, 남영호는 평화롭게 바다 위에 떠있었다. 하지만 수평선 저 멀리서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기상청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갑작스러운 저기압이 서해 바다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남영호의 사람들은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새벽, 모든 것이 바뀔 줄도 모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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